1950-60 시대개요 – 폐허 위의 희망

1945년 8월 15일 해방! 광복! 독립.. 그리고 전쟁!

그렇지 않아도 뒤쳐지고 없이 살던 살림이었는데,
그나마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빼앗기고 서른 여섯 해를 버텨 나라를 되찾았다는 기쁨과 안도도 잠시..
한 민족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싸웠다. 3년간의 전쟁. 남은 것은 잿더미뿐이었다.
도시는 폭격으로 무너졌고, 공장은 불에 탔고, 사람들은 굶주렸다.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다행인 시대. 그래서 이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들엔 가슴 아픈 표현들이 많다. 이 시대의 광고도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된다. 1953년, 전쟁이 끝났다. 남은 것은 잿더미뿐이었다.

1.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전쟁 직후,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건강이었다. 영양실조, 결핵, 기생충. 몸이 성한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서 이 시대 광고의 70% 이상이 의약품이었다. 신문을 펼치면 약 광고가 지면을 가득 채웠다. 활명수, 박카스, 아로나민 — 지금까지 살아남은 장수 브랜드들이 모두 이 시기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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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동제약, 아로나민 (1963)

2. 약 광고가 반이었다.

전쟁 직후,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건강이었다. 영양실조, 결핵, 기생충. 몸이 성한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서 이 시대 광고의 70% 이상이 의약품이었다. 신문을 펼치면 약 광고가 지면을 가득 채웠다. 활명수, 박카스, 아로나민, 판피린. 지금까지 살아남은 장수 브랜드들이 모두 이 시기에 태어났다. 크리스마스 씰은 결핵 퇴치를 위한 국민 참여 캠페인이 되었고, 유한양행의 유일한 박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광고로 말했다.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이, 이 시대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이었다.

3. “미제”라는 이름의 동경

전후 대한민국은 미국의 원조로 버텼다. 밀가루, 설탕, 면직물 — 생필품의 상당 부분이 미국에서 왔다. 자연스럽게 “미제”는 곧 “좋은 것”의 동의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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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희화학, 럭키치약 (1955)

국산 제품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소비자의 마음을 사려면 “미제만큼 좋다”고 말해야 했다. 럭키치약의 “미제와 꼭 같은”이라는 카피는 그 시대의 자화상이다. 국산품을 만드는 자부심과 외국 제품을 동경하는 열등감이 한 문장 안에 공존했다.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콜게이트와 포마드는 ‘신사의 필수품’이 되었고, 평범한 한국인들은 그 문화를 쫓았다.

4.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문제였던 시대

한 가족당 자녀 다섯 명 이상이 보통이던 시절. 전쟁 후 인구는 빠르게 늘었고, 먹여 살릴 수 없는 입이 늘어나는 것은 국가적 위기였다. 1962년, 정부는 가족계획사업을 시작했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공포 소구부터, “알맞게 낳아서 훌륭하게 키우자”는 긍정 소구까지. 지금의 출산 장려 캠페인과 정반대의 메시지가 전국에 붙었다.

5. 맛이라는 개념의 등장

배고픔이 일상이던 시대에, ‘맛’이라는 것은 사치였다. 미원은 가난한 식탁에 ‘맛’이라는 개념을 처음 들여온 제품이었다. 외판원이 전국을 돌며 시식 캠페인을 벌인 것은 한국 마케팅의 원형이기도 하다. 1963년에는 삼양라면이 등장했다. 밀가루 원조 시대에 ‘끓이기만 하면 되는 음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혁명이었다. 해태제과의 연양갱과 부라보콘은 ‘간식’이라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먹고사는 것의 의미가 생존에서 맛으로, 필요에서 즐거움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다.

6. 국산 1호의 시대

1959년, 금성사가 국산 라디오 1호 A-501을 만들었다. “세계의 수준을 달리는 한국의 기술”이라는 카피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선풍기, 냉장고, 합성세제 — 생활가전이 하나씩 탄생했다. 가발, 합판, 섬유를 수출하며 외화를 벌기 시작했고, “수출만이 살 길이다”는 캠페인이 온 국민을 하나로 묶었다. 개인의 소비보다 국가의 재건이 먼저이던 시대. 광고조차 국가적 과업에 복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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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사, 금성라듸오 (1959)

7. 라디오가 먼저였다

1950~60년대의 주요 광고 매체는 신문과 라디오였다. 판피린의 CM송이 전파를 타고 전국에 퍼지던 시대. “감기 조심하세요~ 판피린이 있습니다”라는 멜로디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1961년 KBS-TV가 개국했지만, 수상기가 없는 가정이 대부분이었다. TV 시대는 아직 멀었다. 라디오가 소리로, 신문이 활자로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이 시대의 광고가 말하는 것

1950~60년대의 광고는 ‘광고’라기보다 ‘고지(告知)’에 가까웠다. 알리기만 하면 팔리던 시대. 세련된 카피도, 감각적인 비주얼도 필요 없었다. 신문 한 구석에 제품명과 효능을 적어 놓으면 그것이 광고였다.

하지만 그 소박한 문장들 안에 시대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생존의 절박함, 건강에 대한 갈망, 미국에 대한 동경, 국가 재건의 열망. 이 시대의 광고를 읽는 것은 폐허 위에서 다시 일어서려 했던 사람들의 욕망을 읽는 것이다.

1958년생 개띠. 이제 막 세상에 나온 그 아이가 자라면서 목격할 변화들이 여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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