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11월. 금성사 공장에서 라디오 한 대가 나왔다.
A-501. 국산 라디오 1호였다. 직원들이 모였다. 전원을 켰다.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단순한 음악이 아니었다는 것을, 거기 있던 사람들은 알았다. 한국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증명이었다.
금성 라디오 A-501 — “세계의 수준을 달리는 한국의 기술”
광고 카피는 자신감이 넘쳤다. “세계의 수준을 달리는 한국의 기술.”

사실에 가까웠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아무것도 없다고 믿던 사람들에게, 우리가 만들었다는 것을 알려야 했다. 광고는 제품을 팔기 전에 가능성을 팔았다. 라디오는 단순한 가전제품이 아니었다. 정보의 통로였고, 오락의 수단이었고, 국가 메시지의 전달자였다. 국산 라디오를 갖는다는 것은 근대 문명에 편입된다는 의미였다.
금성 선풍기, 금성 냉장고 — 계보의 탄생
1960년, 금성 선풍기. 1965년, 금성 냉장고.


“금성 눈표 냉장고.” 냉장고 광고에 등장한 이미지는 풍요였다. 최초를 의미하는 검지 손가락을 뽑아든 부유한 이미지의 주부와 열려 있는 냉장고. 가득찬 음식과 맥주. 그것이 중산층의 꿈이었다.
라디오 → 선풍기 → 냉장고. 이 계보는 단순한 제품 라인업이 아니다. 국산 1호가 늘어가는 과정이자, 한국 제조업이 복잡도를 높여가는 과정이다. 라디오는 음파를 처리하고, 선풍기는 전기를 운동으로 바꾸고, 냉장고는 열역학을 다룬다. 기술 역량이 축적되고 있었다.
금성의 광고가 일관되게 말한 것은 하나였다. 우리 기술로 만든 국산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국산 1호’라는 수식어 자체가 가장 강력한 카피였다.
럭키 하이타이 세제 — “빨래판 시대”의 종언
1966년, 럭키(현 LG 화학)가 하이타이 합성세제를 출시했다.
한국 최초의 합성세제였다. 그 전까지 빨래는 물에 불리고, 빨래판에 문지르고, 삶는 것이었다. 하이타이 한 봉지가 그 과정을 단순화했다.

하이타이가 연 것은 세탁기 시대를 향한 문이기도 했다. 합성세제 없이 세탁기는 작동하기 어려웠다. 세제가 하드웨어(세탁기) 보급의 전제 조건이었다. 생활 혁명은 이런 식으로 연결되어 일어났다.
“국산 1호”가 말하는 것
이 시대의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최초’, ‘국산 1호’, ‘우리가 만든’.
지금이라면 그것만으로 광고가 되지 않는다. 최초라는 것이 곧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1950~60년대에 국산 1호는 그 자체로 사건이었다. 소비자가 제품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뉴스였다.
광고는 그 뉴스를 알렸다. 제조업의 태동이 광고의 언어로 기록되었다. 우리가 라디오를 만들었다. 냉장고를 만들었다. 세제를 만들었다. 그 문장들이 모여 한국 산업의 자화상이 되었다.
1958년생 개띠 아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금성 냉장고 광고가 신문에 실렸다. 언젠가 저 집에도 냉장고가 생길 것이라는 희망이, 광고 지면 위에서 조금씩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음 편: 1950-60 라디오가 먼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