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년대 신문을 펼치면 광고의 반 이상이 약이었다.
활명수, 박카스, 아로나민, 판피린, 안티푸라민 등등. 전후 한국에서 가장 절박한 욕망은 몸이었다. 집도 없고 일도 없어도, 몸만은 살아있어야 했다. 그 절박함이 광고 시장의 첫 번째 문을 열었다.
동화약품 부채표 활명수, 100년을 이어온 진짜 활명수
1897년 노천 민병호가 궁중의 비방과 서양 의학을 접목한 활명수를 출시하고 한성 서소문, 지금의 중구 순화동에 동화약방을 열고 활명수를 내놓았다. 활명수는 소화불량에 신속한 효험을 보였고, 탕약을 달이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에 곧 유명세를 탔다. 이내 시장에는 가짜 활명수가 넘쳐났다. 이에 동화약방은 1910년 “부채표”와 “활명수”를 특허국에 등록하고 상표 방어에 나섰다. 우리나라 최초의 등록상표와 등록상품이었다. 그리고 광고를 통해 가짜 활명수와 진짜 활명수를 구분하기 위한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다.
“이 약 사실 때 반드시 부채상표를 주의하시오”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부채표가 없는 것은 활명수가 아닙니다.”
무려 100년 이상을 ORIGINAL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동아제약 박카스, 청년들을 위한 건강음료
동아제약이 1961년 박카스를 내놓았을 때, “젊음과 활력을!”이라는 카피가 겨냥한 건 전쟁 후 지쳐 있던 청년들이었다. 처음에는 알약으로, 다시 앰플형으로, 마지막엔 드링크병으로 진화했다. 약은 아픈 사람이 먹는 것이라는 통념을 깨고, 건강한 사람도 더 강해지기 위해 먹는다는 개념을 처음 만들었다.

일동제약 아로나민, 체력은 국력! 챔피언이 증명한다.
일동제약 아로나민은 세계 챔피언 김기수의 몸을 빌려 “체력은 국력”을 외쳤다. 개인의 몸과 국가의 힘을 연결한 등식. 과장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믿던 이야기였다. 일동제약은 우리 나라 최초의 세계 타이틀전인 김기수와 벤베누티의 『WBA 주니어 미들급 타이틀전』을 전후로 응원의 메시지와 경기 결과 “승리”의 메시지로 광고를 제작해, 대한민국 최초의 스포츠 마케팅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동아제약 판피린, 감기 조심하세요~
라디오에서는 판피린 CM송이 흘러나왔다. “감기 조심하세요, 판피린이 있습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멜로디가 골목을 타고 퍼졌다. 식자율이 낮던 시대, 소리로 전달되는 광고는 글자보다 강했다. 브랜드가 감정과 결합하는 방식이 여기서 시작됐다.
유한양행, 국민보건의 역군
유한양행은 제품 광고 대신 기업 광고를 냈다. “국민보건의 역군.” 왜 이 회사가 존재하는지를 알리는 광고. 창업자 유일한 박사가 사후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했을 때, 그 광고 카피가 공허한 슬로건이 아니었음이 증명됐다. 브랜드는 브랜드를 만든 사람과 닮는다.
최초의 등록 상표, 최초의 등록 제품, 최초의 스포츠 마케팅, 최초의 기업 광고 모두 제약회사들의 몫이었다.
모두가 서툴렀지만 진심을 다해 약을 만들고, 진심을 담은 메시지로 광고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놀라운건 짧게는 60년, 길게는 120년 전에 만들어진 제약회사 브랜드들의 브랜드 전략,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고, 여전히 당시의 메시지를 대체할 더 좋은 메시지가 개발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활명수는 미래에도 부채표가 있어야 진짜고, 박카스는 여전히 젊은이들을 응원하고 있고, 아로나민은 여전히 국민 건강 캠페인을 집행하고 있고, 유한양행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대명사가 됐다.
1950~6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약 광고를 오려 지갑에 넣고 다녔다. 그만큼 진심으로 아프지 않기를 바랬다. 살고 싶었다. 건강하고 싶었다. 그것이 대한민국 소비자들의 첫 번째 바램이자 관심사였다.
*다음 편: 1950-60 | “미제”라는 이름의 동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