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해주는 가족계획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시 삶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들의 삶 속에서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났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의무처럼, 혹은 죽은 자에 대한 대답처럼.
1960년대 초반 대한민국의 합계 출산율은 6.0. 한 여성이 평생 여섯 명의 아이를 낳았다.

보건사회부가 전국을 돌며 가족계획 전국대회를 열고 국민들을 가르쳤다. 아이를 많이 낳으면 안된다고.
벽보도 만들어 전국 방방곡곡에 붙였다. 담벼락에도, 전봇대에도, 시장 입구에도 정신이 번쩍 들 문구가 붙었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
국가의 논리는 단순했다. 입이 많으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난한 가정이 많으면 나라도 가난해진다. 국력을 키우려면 인구를 줄여야 한다. 1961년엔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창립됐고, 전국에 가족계획상담소가 설치됐으며 빈민층에겐 피임약과 피임제를 무료로 나눠줬다. 정부가 정관수술을 장려했고, 정관 수술비를 지원하기도 했으며, 1970년대엔 불임수술한 부부에게 아파트 분양 우선권을 주기도 했다.
산아제한 캠페인은 1960년대 “알맞게 낳아 훌륭하게 기르자” “세자녀만 35세 이전에”, 1970년대 “딸, 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기르자”, 1980년대 “둘도 많다”를 거치며 점점 더 구체적으로 더 적은 수의 아이만 낳을 것을 주문했다.

국가가 출산과 관련한 다음 메시지를 내놓은 것은 2000년대 초반이었다.
“하나는 외롭습니다.” “자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동생입니다.”
그렇게 낳지 말라고 하더니, 아이가 셋이면 애국자가 되는 세상이 됐다.

58년생 주인공의 학교는 콩나물 시루
1958년엔 99만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1959년부터 1971년까지 13년간 매 년 100만명 이상의 아이가 태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학교에서 이 많은 아이들을 최대한 받아줘야 했다. 한 반에 70명, 80명. 좁은 나무 의자에 어깨를 맞대고 앉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옆자리 아이의 팔꿈치가 닿는 거리. 시루에 빼곡히 채워진 콩나물과 다를 바 없었다.

주인공은 형제가 넷이었다. 그것이 보통이던 시절이었다.
주인공이 나이를 먹고 아버지가 되었다. 아들 하나 딸 하나, 1980년대의 바뀐 기준대로 아이는 둘이었다.
1980년대에 태어난 주인공의 아들, 딸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
2025년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7이다.

*다음 편: 1950-60 | 맛이라는 개념의 등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