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A가 기증한 송신기를 활용해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 HLKZ-TV는 1956년 5월에 개국했지만, TV 수상기를 가진 사람들은 없었다. 서울 시내에 고작 300대뿐인 수상기. 문맹률이 높은 시대에 신문 광고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곳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뉴스도, 광고도 눈이 아니라 귀로 전달되었다.
라디오 앞에 온 가족이 모인다. 1950년대 초, 전쟁의 잔해가 아직 거리에 남아 있던 시절, 저녁 8시가 되면 사람들은 라디오 앞에 앉아 숨을 죽였다. KBS 라디오 연속극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극이 절정에 달하면 음악이 끊기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이 시간, 드라마를 협찬해 드리는 △△△을 소개합니다.” 스폰서라는 개념이 한국 대중에게 처음 스며들던 방식이었다.
1950년대 KBS 라디오 드라마는 빠르게 국민 오락이 됐다. 청취율 높은 연속극이 곧 가장 비싼 광고 시간이었다. 의약품 회사들이 가장 먼저 알아챘다. 동화약품, 동아제약, 유한양행이 연속극 스폰서로 들어왔고, “이 드라마는 △△의 협찬으로 보내드립니다”라는 멘트가 청취자 귀에 자연스럽게 박혔다. 라디오 광고는 CM송과 함께 빠르게 성장했다. 글자를 모르는 어머니도, 학교에 못 간 아이도, 노래는 알 수 있었다. 문맹의 시대에 CM송은 더 많은 소비자에 닿기 위한 언어였다.
1961년 12월 31일, KBS-TV가 개국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기술 시연처럼 보였지만, 텔레비전은 라디오가 가져보지 못한 것을 가졌다. 얼굴이었다. 배우의 표정이 보이고, 상품이 직접 화면에 나왔다. 첫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가 방영됐을 때, 협찬을 넣는 방법이 급격히 발전했다. 배우가 마시는 음료, 쓰는 치약, 입는 옷이 모두 광고가 됐다. 배우는 스타가 됐고, 스타는 브랜드의 얼굴이 됐다. 라디오 시절 목소리만으로도 팬을 거느렸던 배우들이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하자, 그들이 손에 든 물건이 다음날 시장에서 팔렸다. 최초의 CF 스타들은 광고 전문 모델이 아니라 드라마 주인공들이었다.
1963년부터 정식으로 TV 광고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아직 마을의 구경거리였다. 한 집에 TV가 생기면 골목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유리창 너머로 화면을 들여다보는 아이들. 광고가 나와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광고 자체가 볼 것이었으니까. 콘텐츠와 광고는 처음부터 함께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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