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 | 맛이라는 개념의 등장

모두가 굶주리던 시절이었다. 아직 이것 저것 먹는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배고픔은 일상이었고, 그저 배고픔만 해결할 수 있으면 좋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대담하게 ‘맛’을 내세우고 획기적인 마케팅을 진행한 브랜드들이 있었다.

미원, 맛의 원조

1956년, 미원 외판원이 전국의 시장을 돌았다.
작은 봉지를 꺼내 국물에 한 스푼 털어 넣는다. 맛을 본 아주머니의 눈이 커진다. “이게 뭐예요?”

미원(味元)
일본의 아지노모토(味の素)가 유일한 조미료이던 시절, 지금의 대상그룹 창업주 임대홍 회장이 일본으로 건너가 제조법을 익힌뒤 시장에 내놓은 국산 기술로 만든 최초의 조미료. 국산 조미료 시장의 문을 열었고, 여전히 시장을 대표하는 브랜드이지만, 어떤 요리든 맛있게 만들어주는 요리의 치트키, 사기템으로 인식되어 오히려 요리에 미원을 넣어 맛을 냈음을 직접 언급하긴 꺼려지는 브랜드. 그래서 제품의 화학 원료 이름 MSG(MonoSodium Glutamate)로 더 많이 언급되는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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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 (1968)

1963년 제일제당(삼성)이 미풍(味風)을 출시하고 막강한 자본력과 영업력으로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끝내 미원이 선점한 “입맛”을 이기지 못해, 훗날 이병철 회장이 자서전에서 마음대로 안된 것 세 가지 중 하나로 꼽은 조미료 시장의 원조!
후발주자였던 미풍은 무채칼, 고무장갑을 사은품으로 주는 김장 세트를 출시하기도 하고, 고급 스웨터를 경품으로 주는 등의 경품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소매점의 간판을 교체해 주는 오늘날의 채널 마케팅까지 진행했으나, 결국 미원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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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과 미풍의 조미료 전쟁 (1960~1970년대)

삼양라면, 우리의 식생활을 해결해준 라면

1963년 9월. 삼양식품이 한국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을 출시했다.

당시 한 봉지 가격은 10원. 밀가루 원조가 넘쳐나던 시대에, 일본의 기술을 들여와 만든 이 국수는 혁명적이었다. 끓는 물에 3분이면 OK를 말했다.

광고는 간편함을 말했고, 사람들은 시간을 샀다. 일하고 돌아온 사람이 빠르게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제품. 가난한 사람이 따뜻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제품. 라면은 편의식이기 전에 구호식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삼양라면의 광고는 제품을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 어떻게 끓이는지, 얼마나 맛있는지. 아직 브랜드 이미지를 설계할 단계가 아니었다. 개념 자체를 설명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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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라면 (1960년대)

샘표간장, 전통 식품의 산업화

장(醬)은 한국인의 밥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기본 중의 기본 재료다. 전쟁이 나자 피난민들은 장을 담글 수 없었고, 샘표는 이들에게 간장을 팔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에게 장을 담그는건 어려운 일이었다. 항아리를 놓고 된장 간장을 담글 공간도, 시간도 없었다. 샘표는 이들에게 공장에서 만든 간장을 병에 담아 팔았다. “구미에 맞고 영양이 풍부한 품질 좋은 간장”이라는 카피와 어머니가 등장하는 구성으로 어머니의 손맛을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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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표간장 (1950년대)

공장에서 만든 제품이 어머니의 손맛을 낸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도시화가 그 변화를 가속하고 있었다.

해태제과, 간식이라는 문화의 탄생

해태제과의 제품들은 먹는 것에 새로운 범주를 추가했다. 끼니가 아닌 것. 필요가 아닌 즐거움. 간식이라는 개념이었다. 아이들이 동전을 모아 캬라멜을 사 먹는 풍경. 이것은 한국 소비문화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생존을 위한 먹거리에서 기쁨을 위한 먹거리로. 광고도 달라졌다. 기능이 아니라 행복을 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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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캬라멜 (1956) 해태고급양갱(1957)

배고픔에서 맛으로

미원, 삼양라면, 샘표간장, 해태제과. 이 브랜드들은 1950~60년대에 먹는 것의 의미를 바꾸었다.
생존 → 편의 → 맛 → 즐거움.
이 이동이 불과 10년 사이에 일어났다. 광고는 그 이동을 가속화했다. 사람들이 아직 모르는 욕망을 광고가 먼저 말했다. 당신은 이제 그냥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맛있게 먹을 자격이 있다고.

*다음 편: 1950-60 | 국산 1호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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